관광지 소개 (부하라)
관리자 2007.07.04 11:43 2411

실크로드 여정상의 주요 오아시스 중의 하나였던 부하라는 산스크리트어로 '수도원"

이라는 뜻이다

오아시스 도시로 출발하였으므로 도시자체의 면적은 그다지 크지 않으며 도보관광이

가능하다 타 도시들에 비해 소위 문명화와 도시화가 덜돼있는 편이다

부하라의 상징인 이스마일 사마니 영묘,칼리안 미나레트 (이슬람 사원에 부속된 망루

건물로 종교적 기능외에 사막의 등대 역활도 함)

등은 이슬람 건축예술의 정수를 보여준다

이스마일 사마니 영묘는 부하라에 남아있는 가장오래된 건축물이다

이 영묘는 구운 벽돌에 상감을 입혀서 지은 것으로서,햇빛의 각도에 따라 색깔이

다르게 보인다

 

 

왕의 별궁이었던 ' 방주 성채'는 오늘날 박물관으로 쓰인다

부하라의 시가지를 거닐면 이런 유서 깊은 유적과 건물들이 140여개소나 늘어서 있어서

현지인 조차도 이름을 혼돈할 지경이다

말하자면 부하라 역시 하나의 거대한 '도시 박물관' 인 셈이다

10세기 무렵의 부하라는 과학과 예술의 중심지였다

나라샤시,루다키 같은 시인이 도시에서 배출되었고,아비씨야(980~1037) 같은 과학자

가 배출되었다

14세기에는 쉐이크 바하우트딘 나슈반디라는 위대한 종교지도자가 나와서 그의

종교이론을 설파하였는데 , 이 이론은 중앙아시아일대는 물론 코카서스지방까지

널리 유포되었다고한다

 

부하라에는 수 많은 신학교들이있다

그 중 으뜸은 1536년에 세워져 지금도 학생을 가르치고있는  중앙아시아 유일의

이슬람신학교인 미르 아랍 메드레세이다

20세기들어와, 이 고도의 부하라에 인접한곳에 신도시가 건설되었다

이 신도시는 전망좋고 오아시스 관개로 푸른 수풀이 우거지고 분수와 호텔이 들어 서 있다

 

 

16세기 이래로 전통을 이어오고있는 리아비카우스 바자르는 금 세공품,금석 공예품,비단 제품으로 유명하다

20세기 공업도시로서 부하라는 카라쿨 양모 가공 제품을 생산, 전 세계에 수출한다

또 최근에는 부하라 근처에서 천연가스와 석유가 매장된것이 발견되어 부하라의 공업화가

추진되고있다

 

부하라 역시 타쉬켄트에서 비행기 편으로 방문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다

 

 

 

 

 

부하라(Бухара)의 명소들


1. 라비 하우스

2. 나지라 지반베기 메드레세 
3. 훗자 나스렛딘의 동상
4. 마고키 앗타리 모스크
5. 칼란 미나레트

6. 칼란 모스크

7. 미르 아랍 메드레세

8. 아르크 성

9. 챠슈마 아유프 묘

10. 이스마일 사마니 묘

11. 쉬토라이 모히하사 궁전

 

1. 라비 하우스
‘하우스’는 호수(연못)라는 뜻이다. 전설에 의하면 17세기 부하라 지역의 지배자였던 나지라 지반 베기가 이곳에 큰 연못을 만들고 싶어해 땅주인 여자에게 이 땅을 팔기를 요청했으나 단호히 거절당했다. 그래서 나지라 지반 베기는 그녀의 집 밑으로 운하를 지나가게 만들었다. 그러자 운하의 물에 의해 집이 떠내려가기 시작하자 그녀는 땅을 팔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연못은 1620년에 완성되었으며, 연못의 옆으로 수로가 나 있다. 옛날에는 부하라에 약 100개의 하우스(연못)이 있었다고 한다.


2. 나지라 지반베기 메드레세
1622년 나지라 지반베기에 의해 건설된 신학교로 정면 입구의 선명한 색타일의 그림이 눈에 띈다. 2마리의 봉황이 힘차게 날개짓을 하며 태양을 향해 날아가는 그림으로, 태양의 중심에는 사람의 얼굴이 그려져 있는데 사마르칸트의 쉬르도르 메드레세의 그림과 같은 것이라 흥미롭다. 무엇보다도 우상숭배를 부정하는 이슬람의 교리에 반대되는 예외적인 것이다.
정면 입구로 들어서면 지금은 안마당에 차이하나가 있고, 마당을 둘러싼 방은 선물가게와 공방이 되어있다. 메드레세와 라비하우스 사이에 공원이 있고 맞은편에는 같은 이름은 하나카가 있다. 하나카는 옛날 순례자들이 묵었던 숙소로써 요즈음으로 말하면 경관 좋은 곳에 위치한 호텔인 셈이다. 북쪽에 있는 것이 쿠켈다쉬 메드레세로, 1568년에 지어진 160개의 승방이 있는 큰 메드레세이며 중앙 아시아의 각지에서 신학생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3. 훗자 나스렛딘의 동상
라비 하우스와 메드레세 사이의 공원에는 당나귀에 걸터앉아 손을 들고 장난을 치고 있는 듯한 남자의 동상이 있다. 그는 이슬람 신학자로서 유머가 풍부한 수업으로 학생들을 즐겁게 했으며 지금도 그의 이야기책은 여러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다.


4. 마고키 앗타리 모스크
아주 오래 전부터 묻혀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묻혀있던 것을 1936년 러시아의 고고학자 시슈킨에 의해 발굴 되어진 모스크이다.
마고키는 ‘굴안’이라는 뜻으로 둘레가 굴처럼 파여있어 붙혀진 이름이며, 앗타리는 ‘약을 판매하는’이라는 뜻으로 예전에는 모스크 주변에서 약을 많이 팔았다고 한다.
벽면은 세 층으로 나뉘어 있어 이 모스크의 역사를 말해준다. 아래에 조각된 벽돌층, 그 위 아라베스크 모양, 그리고 가장 새로운 층으로 나뉘어 있다. 파괴되었을 때 그대로 그 위에 지어진 것이라 그렇다.


5. 칼란 미나레트

‘칼란’이란 타직어로 ‘크다’라는 뜻으로, 이름에 걸맞게 높이가 46m에 이른다. 그래서 부하라의 어느 곳에서도 보이는 부하라의 상징이다.
1127년에 칼란칸 왕조 아루스 칸에 의해 지어진 것으로 부하라의 흥망을 지켜본 산증인이라 일컬어진다. 탑의 기단부 직경은 9m, 토대부분이 지하로 10m 들어가 있다. 탑은 위로 갈수록 좁아드는 원통형으로 탑의 벽면은 14층으로 나누어 여러 가지 벽돌을 다르게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장식했다. 벽돌들은 햇빛에 구운 갈색 벽돌이며, 달걀의 흰자와 낙타젖으로 이긴 반죽으로 붙여 쌓았다고 한다. 미나레트는 모스크의 벽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으며 다리로 이어져 있다. 내부에는 105개의 나선계단이 있으며, 관리인과 잘 협상만 하면 올라갈 수도 있다(현재 공식적으로는 금지하고 있다). 탑 꼭대기에서는 부하라 시내의 아름다운 전경이 모두 보여 ‘부하라 관광의 백미’라고도 할 수 있다.
미나레트는 사막의 등대로써 사막 여행객에게 있어 중요한 길잡이였다. 또한 18세기 경에는 ‘공개 처형장’으로 꼭대기에서 자루에 넣어진 사형수를 던졌기 때문에 ‘사(?의 탑’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최후의 사형은 1884년에 행해졌다고 한다.


6. 칼란 모스크
칼란 미나레트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 칼란 모스크다. 1514년 칼란칸 왕조 아루스 칸에 의해 지어졌다. 이름에서도 나타나는 것처럼 특히 규모가 큰 모스크로 사마르칸트의 비비하님 모스크에 필적한다. 넓이는 1헥타르 정도로 1만 2천명의 신자가 한번에 예배를 할 수 있다. 구소련시대에는 창고로 쓰였으나 독립 후 다시 예배소로 재개되었다.
입구는 7개가 있지만 동쪽이 정면입구로 색타일로 장식되어 있다. 들어서서 정면에 푸른 돔이 우뚝 솟아 있고 정원은 회랑으로 둘러싸여 있다. 회랑은 208개의 기둥으로 천정을 지탱하고 288개의 반구형 지붕으로 덮혀있다.


7. 미르 아랍 메드레세
칼란 모스크에 마주보고 지은 거대한 2개의 아치형 푸른 돔을 가지고 있는 것이 미르 아랍 메드레세이다. 청과 백의 모자이크 타일에서 시작되는 식물문양, 문자문양을 짠 장식은 말기 티무르 양식의 전형적인 예이다. 정원을 둘러싼 회랑의 1층은 주요 회의를 개최하는 방과 도서관, 식당 등의 작은 방, 2층은 기숙사로 되어 있다. 많은 신학교 중에 구 소련시절에도 중앙아시아에서 문을 열었던 유일한 신학교이다. 교육년한은 7년으로 시험으로 선발된 학생은 아라비아어, 코란, 이슬람법 등을 공부했다.


8. 아르크 성
카펫 바자르를 지나 도로쪽으로 나오면 매끈하게 쌓아올린 거대한 성벽이 눈에 띈다. 그 옛날 성을 탈환하기 위한 병사들처럼 한번쯤은 성벽을 타고 올라가고 싶은 충동도 생긴다.
이 성이 언제 최초로 지어졌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다만 7세기 훗자 하우톤 여왕이 이 성에서 아랍과 싸웠다는 문헌으로 비추어 7세기 이전에 축조되었을 것이다. 수많은 전쟁으로 성은 파괴되고 재건되기를 거듭하다가 지금의 모습은 18세기 부하라 칸국시대에 완성되었으며, 1920년 러시아에 의해 멸망할 때까지 왕들이 살았던 성이다. 부하라 칸국시대의 왕들은 대부분 잔악한 폭정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했다고 한다. 부하라에서 가장 많은 유혈을 보아 온 곳이라고도 말을 한다. 성벽을 따라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성문이 나온다. 성문으로 들어가면 오르막길 양쪽으로 죄수들을 가두었던 감옥이 있는데 현재에는 인형으로 그때의 상황을 재현하고 있다. 성내에는 모스크, 옥좌, 거실 등이 있으며, 작은 박물관에는 형을 집행하는 장면, 감옥, 노예들의 생활, 의료기구 등을 전시하고 있다.


9. 챠슈마 아유프 묘
‘챠슈마’는 ‘샘’이란 뜻이며, 아유프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예언자 욥으로 ‘욥의 샘’이란 뜻이다. 사람들이 물 부족으로 고통받을 때 욥이 이곳을 지팡이로 내리치자 샘물이 터져 나왔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
세 개의 지붕모양이 서로 다른데, 왜냐하면 14세기에는 가장자리에 돔을, 16세기에는 맨 앞의 돔을 짓는 등 시간의 차이를 두고 건물을 증축했기에 서로 다른 모양의 건물이 되었다.
예전에 이 샘은 눈병을 낫게 한다고 해 많은 사람들이 멀리서 왔었지만 전염병 유행으로 금지 되었다. 지금도 안에는 샘이 있고, 여전히 물이 터져 나오고 있으나 물맛은 그리 좋지 않다. 그래도 몸에 좋다고 하여 모두들 꼭 한잔씩은 한다. 내부에는 특별한 장식이 없으며 빛 바랜 옛 사진들과 그림을 전시 판매하고 있다.


10. 이스마일 사마니 묘
이슬람 초기 건축양식의 영묘로 892년에서 943년에 걸쳐 지어진, 중앙아시아에서 현존하는 최고(?)의 이슬람 건축물이다. 9세기말에 부하라를 점령, 수도로 정한 사만 왕조의 이스마일 사마니가 부친을 위해 지은 영묘지만, 그 후 그와 그의 자손도 묻혀 사만 왕조의 왕족 영묘가 되었다. 몽골 내습으로 마을이 파괴되었을 때 마고키 앗타리 모스크와 함께 거의 땅 속에 묻혔으며 주변이 모두 묘지였기 때문에 쉽게 알아채지 못했다가 1925년에 발굴되었다. 햇볕에 말린 벽돌을 쌓아 올린 후 반구형 돔 지붕을 만든 단순한 구조지만 그 외관은 사람들의 주목을 끈다. 벽면을 다양한 문양의 벽돌로 여러 가지 모양으로 쌓아올린 것이 볼거리로 음영이 있고 당시 건축가의 기술과 미의식에 놀랄 수밖에 없다. 벽면은 햇살의 강약, 각도에 따라 그 음영의 변해 다양한 느낌을 준다.
현지인들 사이에서는 숨을 참고 묘를 2바퀴 돈 후 소원을 빌면 반드시 소원이 성취된다고 한다. 실제로 해보면 숨을 쉬지 않고 2바퀴 도는 일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11. 쉬토라이 모히하사 궁전
‘쉬토라’는 별을 뜻하고, ‘모’는 달, ‘하사’는 장소를 뜻한다. 그래서 ‘달과 별의 궁전’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궁전으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만들어진 여름 궁전으로 부하라 칸국 최후의 칸인 아리무 칸이 많은 시간을 이곳에서 보냈다. 건설에는 러시아 건축가와 현지의 기술자가 참가해 동서의 양식이 혼재하는 궁전이 되었다.
대부분의 부하라의 건물이 푸른색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반해 이 궁전의 입구는 붉은색으로 장식되어 있어 새로움이 느껴진다. 제일 호화스런 궁전은 정원을 둘러싼 듯한 흰 궁전으로 외부는 유럽양식으로 만들어졌으나 내부는 부하라 양식의 화려한 문양이 돋보인다. 궁전 내 응접실 등에는 보석, 무기, 침구류, 양탄자, 악기, 일본의 화병 등이 장식되어 있다.
정원에는 나무들이 무성하고 형형색색의 꽃이 피었으며 공작이 돌아 다녀 지금도 충분히 화려했던 당시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많은 젊은 여성들을 수영하게 했던 연못과 그 모습을 지켜보던 테라스, 300여명의 후궁을 살게 했던 하렘 등도 있다. 칸은 수영하는 여성들을 지켜보다 맘에 드는 여성에게 사과를 던져 그 날의 상대로 결정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 궁전을 지을 때 장소를 결정하기 위해 칸은 4마리의 양을 여러 곳에 방목하도록 했다. 그 후 4마리의 양을 조사해보니 이곳에 방목했던 양이 가장 많이 살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이 가장 공기가 맑고 건강에 이로운 곳이라 정하고 이곳에 궁전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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