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벡 민족 형성 14세기 후반 킵차크 칸국이 분열하여 그 일족 샤이바니가 아랄해 북방의 초원지대에 정권을 수립하였을 때, 그의 밑에 모인 투르크계 및 투르크화한 몽골 유목민 집단을 우즈벡이라고 스스로 불렀다. 샤이바니(Sheibani) 칸은 이들을 이끌고 서(西)투르키스탄에 침입하여 샤이바니 왕조를 세우고, 그 뒤 부하라 칸국·히바 칸국·코칸드 칸국을 세워 근세 중앙아시아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 역할을 하였다. 후에 우즈벡이라는 민족명은 스텝에서 이주한 부족들뿐만 아니라 우즈베키스탄 현지 부족들을 통칭하는 것으로 되었다. 우즈벡인들은 호레즘, 소그드인, 마사케트인, 사카인 등 중앙아시아 고대 이란계 원주민들을 기저층으로하여 투르크족이 발전하여 형성된 민족이라고 할 수 있다. 우즈벡인들이 세운 부하라 칸국은 사마르칸드 지역에, 히바 칸국은 아무다리야 하류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코칸트 칸국은 페르가나 지역을 장악하였다. 부하라 칸국은 1753년 마그니트(Magnit)조에 의해 설립되고 하이다르(Haydar: 1800-1826) 재위 기간 동안에 칸국으로 자리를 잡았으며, 히바 칸국은 호레즘 지역의 계승 왕국으로서 18세기 우즈벡 제후들에 의해 통치를 받았다. 코칸트 칸국은 페르가나의 봉건 제후 알림 칸(Alim Khan)에 의해 설립되었다. 그러나 이들 세 개의 칸국은 상호 불신과 반복 대립하는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러시아의 진출에 공동으로 대처하지 못하였다. 또한 유목 민족적인 전통이 뚜렷이 남아 있는 투르크계 부족들은 민족 공동체 의식이 극히 부족하여 자신들의 정체성을 자기 부족성에 두고있었다. 우즈벡 민족이 중앙 집권적 민족주의로 발전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몽골 침입에 있었다. 몽골은 호레즘 샤 통치하에 형성되었던 중앙 집권적인 강력한 통치 체제를 파괴시켰으며, 중앙아시아를 여러 봉건적 지방 세력으로 분할하였다. 이와 같이 분할된 중앙아시아는 사회 경제적인 면에서나 정치적인 면에서 매우 낙후된 결과를 초래하였고, 끓임없는 부족간 전쟁으로 인해 경제적 악화와 농업과 수공업의 쇠퇴 현상을 초래하여 중앙아시아의 민족 공동체 발전 및 민족 단일체로의 발전에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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