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실크로드 낭만 오롯이' 톈산북로 우즈베키스탄
고비사막 상공을 지나 톈산산맥(天山山脈)을 넘어 도착한 타쉬켄트 공항은 보따리 상인과 여행객 등으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중앙아시아의 옛 실크로드 한복판에 있는 사막과 오아시스의 나라 우즈베키스탄. 우즈베키스탄은 실크로드의 여러 갈래길 중에서 톈산북로(天山北路)에 해당한다.
오아시스의 푸른 초원길이 시작되는 우즈베키스탄은 2,500여년 동안 알렉산더 대왕, 아랍, 그리고 칭기즈칸의 지배를 받은 뒤 14세기에 이르러 위대한 티무르의 시대가 열렸다. 타쉬켄트와 사마르칸드·히바·부하라 등 실크로드 시대의 낭만적인 오아시스들이 모두 티무르 시대에 건설됐다. 사막을 횡단하는 실크로드의 대상(隊商)들은 이곳에서 여독을 풀며 비단, 향료, 소금, 종이, 도자기 등 각종 문물을 거래했다.
우즈베키스탄은 오랜 세월 동안 우리와도 참 깊은 인연을 맺어왔다. 사마르칸드 아프라시압 박물관에 전시된 7세기 벽화에는 조우관(鳥羽冠)을 쓴 고구려 사신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8세기 초 서역에 다녀온 혜초(慧超)스님도 '왕오천축국전'에 사마르칸드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타쉬켄트는 고구려 유민 출신으로 당나라 장수가 된 고선지 장군이 점령했던 바로 '석국'(石國)이다. 오늘날 우즈베키스탄에는 옛 소련거주 카레이스키(고려인) 45만명 가운데 절반인 23만명이 살고 있다. 고려인들은 강인한 생활력과 근면성으로 황만근, 김병화 같은 '노동영웅'을 배출해냈다.
타쉬켄트 구시가지에는 진흙 벽돌집과 모스크사원, 메드레세(이슬람 학교) 등 실크로드와 오아시스의 잔영이 남아있다. 1966년 대지진 이후 새로 건설된 신시가지는 아름드리 플라타너스 가로수 사이로 우중충한 건물과 낡은 아파트만 눈에 띈다.
이런 회색빛 거리를 밝게 해주는 것은 젊은이들이다. 우즈베키스탄은 실크로드의 나라답게 그리스, 러시아, 터키, 아랍, 우즈벡, 타지크, 카자흐, 타타르, 우크라이나인 등 숱한 민족이 섞여 살고 있다. 혼혈 또한 다양하고 여성은 대부분 미모가 뛰어나다. 시내 중앙의 브로드웨이는 우리의 대학로쯤에 해당하는 젊은이 거리로, 그야말로 자유와 낭만이 넘친다.
'바자'(재래시장)는 우즈베키스탄의 토속적인 삶의 향취가 물씬 풍겨나는 곳이다. 수많은 상인들이 지붕만 있는 난전에 좌판을 벌려놓고 손님을 맞는다. 쿠일륙바자, 초르수바자 등 타쉬켄트 시내에만 13군데의 대형 바자가 있다. 과일, 빵 등 식료품과 일상용품은 물론 실크로드 시대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카페트와 동제 사모바르(찻물 끓이는 주전자), 파피루스 그림 액자 등 없는 게 없다.
침간산은 장엄한 산세와 만년설, 산 중턱에 자리한 쪽빛 호수 등 절대 청정의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타쉬켄트에서 자동차로 2시간 거리. 톈산산맥의 줄기로 해발 2000m의 준봉들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침간산 중턱인 해발 1,600m 고산지대에 차르박 호수가 있다. 톈산과 침간산의 만년설이 녹아내린 물을 받아 저장하는 인공 담수호다. 1년 내내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타쉬켄트는 차르박호수의 물을 수로로 끌어내려 주민들의 수돗물과 밀·목화 농사를 짓는 콜호즈(집단농장)의 농업용수로 이용한다.
침간산 차르박호수로 가는 길은 나무가 거의 없는 특이한 모습의 초원 구릉이 계속 이어진다. 산길은 가파르고 숨차다. 이 지역 검문소에서는 군인들이 외국인 관광객들을 함부로 대하며 뒷돈을 요구한다. 침간산의 고산지대 원주민 마을에서는 품질 좋은 꿀을 생산한다. 오염이라고는 모르는 곳에서 따낸, 말 그대로 100% 천연 벌꿀이다. 주름살 깊은 노인들이 꿀과 과일 등을 길가에 내놓고 판다. 절벽을 기다시피 오르내리며 풀을 뜯는 양떼, 노새의 등에 올라탄 어린아이들을 보면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한여름의 치르박 호수는 피서지로, 겨울의 침간산은 스키장으로 유명하다. 승마도 즐길 수 있다. 스키장과 호수 주변에는 리조트가 즐비하다.
'푸른 도시'라는 뜻을 가진 이슬람 고도(古都) 사마르칸드는 타쉬켄트에서 차로 5시간 거리에 있다. 아름다운 저녁노을과 빛바랜 벽돌집, 이슬람사원의 푸른색 돔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섬세한 모자이크 무늬가 아로새겨진 레기스탄광장의 건물과 비비하님 사원, 티무르의 묘 등 온갖 탑과 사원들에서 '아라비안 나이트'의 알라딘과 신밧드의 숨소리가 느껴지는 듯하다. '실크로드의 진주'로 불리는 부하라에서는 높이 50m의 칼리얀 첨탑이 단연 돋보인다. 이 첨탑은 예배시각을 알리는 종교적 기능과 함께 사막의 긴긴 지평선에 지쳐 있는 실크로드 상인들을 위한 등대였다. 낮에는 높이로, 밤에는 불빛으로 그들을 이슬람의 도시로 불러들였다. 히바의 이찬 칼라는 유네스코의 인류 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인류가 지구상에 닦아놓은 가장 길고도 위대한 길 실크로드. 과거 낙타를 앞세운 캐러밴(隊商)들이 다니던 실크로드를 차를 타고 달리는 기분은 참으로 묘하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사막의 길은 아득한 중세의 광야를 거슬러 가는 느낌을 준다.
경향신문 2002년 11월 27일